연재 ㅣ 김현수의 마음성장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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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 성장학교 ‘별’ 교장

하루 진료의 절반은 우울한 청소년들을 만나는 일이다. 이 우울한 청소년들을 진료하는 일의 어려운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본인 자신은 우울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학교에 결석하고, 귀가가 늦어지거나, 술이나 담배에 손을 대는 등의 일탈행동을 한다. 셋째, 부모도 아이가 우울하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다른 가면을 썼지만, 그 가면 뒤에 깊은 우울함을 가진 가면 우울증 상태도 많다.

중학교 때까지 속을 썩이지 않던 학생이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겨울방학 때 전학을 보내달라고 짜증을 내고, 어울리지 않던 친구들과 어울려서 집에 늦게 오거나 오지 않겠다고 겁박을 해서 병원에 부모가 데리고 온 사례가 있었다. 부모는 영문을 모를 정도로 변해버린 아이가 당황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처럼 계속 싸우면서 지내다 무슨 일이 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아이가 자해까지 해서 더 놀란 상태였다.

다행히 초기 상담에서 아이는 자신의 가면을 벗고, 마음을 열어주었다. 갑작스런 행동 변화의 이유는 고1 성적 때문이었다. 기대와 너무 달라 실망했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이라고 했다. 부모의 실망이 두렵고, 자신의 무능력이 괴로웠던 것이 이 우울의 뿌리였다. 성적으로 부모를 기쁘게 해줄 수 없는 자신은 나쁜 아이고, 이제 나쁜 아이처럼 행동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자신에겐 구제보다 처벌이 필요하며, 자신이 너무 싫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 처벌적 의미로 혼날 행동과 자해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부모 몰래 진짜 많이 울었다고 한다.

자기실망에 이은 깊은 우울을 시드니 블랫이라는 치료자는 초자아 우울증, 내사 우울증이라고 불렀다. 어느 순간부터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난 나빠, 난 한심해, 내가 문제야’라는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부정적 감정, 혼날 만한 행동, 포기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우울증이다. 원인은 그 아이의 마음속에 새겨진 목표, 혹은 부모가 내면화한 기준이 높거나 이상화된 것에 있었다. 그 목표와 기준을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인정과 사랑, 존재감을 상실할 것에 대한 반응이 우울로 나타난다. 어떤 청소년들의 경우, 이상과 기준이 암처럼 자라나서 자신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자신을 죽일 정도로 힘들게 한다. 정신분석가 장 비드 나지오는 일부 청소년들의 초자아 즉, 양심과 이상을 다루는 마음의 장치가 암처럼 커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속마음을 꺼내어 이야기하고, 이해받는 느낌을 경험하면서,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 자체로 무조건 비난받을 일은 아니며, 어른들의 실망이 본인이 생각한 것만큼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이는 조금씩 나아졌다. 상담을 통해 본인의 노력을 인정하도록 돕고, 새롭게 조정된 목표를 세우는 한편 부모가 비난을 멈추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부담과 압력을 줄인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자신에 대한 공감과 함께 치료자와 부모로부터 무조건적 수용, 믿음에 대한 확인, 그리고 친밀한 관계를 회복한 것이 우울증 치유에 큰 힘으로 작용했다.

우리 문화는 기준이 너무 높고, 기대도 너무 크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실망에 대해서도 더 많이 걱정해야 하는 나라다. 부모의 끔찍한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기대로부터 멀어질 때 ‘난 나빠’를 속으로 되뇌이며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때 아이가 진짜로 나빠진 것이 아니라 실망과 함께 낙담하면서 우울해지지 않았는지 꼭 확인해볼 일이다. 인정과 격려를 하는 것이 혼내는 일보다 필요한 것을 알면 힘든 시간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