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 음료 중심 과세
영국은 당 함량 30% 줄여
국내 도입 땐 업계 부담이재명 대통령이 '설탕 부담금' 도입 필요성을 잇달아 언급하면서 식음료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설탕 과잉 섭취를 줄여 국민 건강을 지키고 재원을 공공의료에 활용하겠다는 취지지만, 가당 음료를 중심으로 부담금이 부과될 경우 가격 인상과 제품 개편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업계는 대통령의 직접 언급을 정책 검토가 본격화됐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설탕 부담금 논의와 관련해 "어려운 문제일수록 허심탄회한 토론과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설탕 부담금과 부동산 세제 개편처럼 이해관계가 복잡한 사안일수록 정확한 사실과 현실 사례에 기반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설탕세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도 함께 공유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이후 SNS를 통해 설탕 부담금 도입 필요성을 연이어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이 언급한 '설탕 부담금'은 담배에 부과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과 유사한 방식의 부담금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담배 한 갑(4500원)에는 841원의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이 포함돼 있으며, 이는 금연 및 보건 사업 재원으로 쓰이고 있다.
지난달 설탕과 소금의 물가 상승률이 1년 만에 동시 최고가를 기록한 가운데 11일 서울 양재하나로마트에 설탕이 진열돼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정치권은 공론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은 오는 12일 국회도서관에서 '설탕 과다 사용 부담금 도입'을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도 가당 음료 제조·가공·수입업자에게 첨가당 함량에 따라 부담금을 부과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김 의원안에는 가당 음료에 대해 리터(ℓ)당 225~300원의 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민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이 지난달 전국 성인 10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1%가 '설탕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기업에 부담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답했다. 품목별 찬성 비율은 탄산음료(75.1%), 과자·빵류(72.5%) 순으로 높았다.
설탕 부담금 논의의 배경에는 비만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가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은 2016년 기준 비만으로 인한 직접 의료비용이 4807억달러, 생산성 손실 등 간접 비용이 1조240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9.3%에 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2006년 4조7654억원에서 2021년 기준 약 15조6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식음료업계는 아직 구체적인 입법안이 나오지 않았지만 부담금 도입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특히 가당 음료 비중이 높은 음료업체들은 부담금이 현실화될 경우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내부 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한 음료업체 관계자는 "담배처럼 특정 품목을 대상으로 부담금을 부과하면 가격 인상이나 제품 구조 조정은 불가피하다"며 "현재 원가 구조상 제조사가 비용을 흡수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가 가장 민감하게 보는 부분은 부담금 부과 대상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설탕 원재료가 아니라 가당 음료를 중심으로 부담금을 부과하는 경우가 많다. 조성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설탕은 대부분의 식품에 쓰이는 기초 원료여서 직접 과세하면 먹거리 전반의 가격을 자극할 수 있다"며 "가당 음료는 주식이 아니면서도 당류 과잉 섭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 정책 타깃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당류 섭취 구조도 음료에 집중돼 있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당류 섭취량은 58.9g으로, 이 가운데 61.8%가 가공식품을 통해 들어온다. 특히 탄산음료 등 음료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32.7%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하루 섭취 기준은 총열량 2000㎉ 기준 약 50g이다.
해외에서는 영국, 프랑스 등 120여개 국가가 이미 가당 음료 과세를 시행하고 있다. 영국은 2018년 '청량음료 산업 부담금(Sugar Drinks Industry Levy)'을 도입해 음료에 포함된 설탕 함량에 따라 세율을 차등 적용하고 있다. 제도 도입 이후 제조사들이 레시피를 조정하면서 탄산음료의 평균 설탕 함량이 약 47% 감소했고,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의 비만율이 약 8% 낮아졌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국내에서 부담금이 도입될 경우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에서도 가당 음료세 도입 이후 코카콜라와 환타 가격이 ℓ당 3~6센트 오른 사례가 있다.
업계는 '제로 슈거' 제품 확대 역시 단기간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알룰로스 등 대체 감미료는 설탕보다 원가가 3배 이상 비싸고, 맛과 보존성 문제로 적용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음료업체 관계자는 "세금만으로 소비자 기호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며 "결국 가격 인상이나 제품 구조 조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