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4년 전, 나는 나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아오지까지>를 출간했다. 탈북 과정에 대한 이야기와 한국에서 정착하며 부딪히고 고민했던 이야기들을 담았다. 나는 북향민들이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책들을 종종 읽는다. 얼마 전에는 북향민이 쓴 책이 아니지만,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쓴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는 책을 읽으며 '엄마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이 책의 제목은 그 자체로 강렬하다. '살아남은 여자들' 그리고 '세계를 만든다'는 주체와 행위에 대한 명징한 표현. 언뜻 보면 여성주의에 관한 책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책장을 넘기면 그곳엔 분단된 나라에서 가장 약자로 살아내야 했던, 바로 우리 엄마들의 처절하고도 위대한 역사가 담겨 있다. 저자는 연변에서 지내는 조선 여성들과 탈북 후 일본에 정착한 재일 탈북 여성을 만나 인터뷰 하고 그들의 삶을 서사 기법으로 서술했다(이 글에서는 탈북 후 중국에 머무는 탈북 여성을 '조선 여성'이라 표기하겠다. 실제로 중국 현지인들은 조선 여성으로 부른다).

소설 같으면서도 에세이 형식이라 쉽게 읽어 내려가다가 툭툭 막히곤 했다. 그들의 고통과 고뇌하는 삶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내게는 익숙한 주제라 어떤 이야기들에는 내 일처럼 감정이입이 컸다. 분단 체제에서 가장 약자인 여성, 그것도 탈북했기에, 안전 지대가 없는 중국 땅에서 조선 여성들의 삶은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식민과 전쟁, 그리고 분단이 중첩되어 있는 고통들이다. 북한을 탈출한 조선 여성들의 중국에서의 삶은 대개 처절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야기처럼 꺼내는 그들의 목소리조차도 듣기가 힘들다.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당사자들에게는 고통을 다시 상기하는 과정이다.

'살아남는다'는 의미

 책표지
ⓒ 창비

책을 읽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과연 '살아남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그것이 단순히 목숨을 부지한다는 뜻을 넘어, 고통스러운 삶과 역경을 온몸으로 해체해 온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세계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혹한 현실을 헤치고 만들어낸, 그들의 삶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부와 명예, 권력을 가진 이들의 삶 또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큰 업적을 성취한 삶을 영웅적이라 칭송한다. 하지만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북한을 탈출하여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세상에 던져진 이들에게는, 그저 살아남는 것 자체가 영웅적인 삶이라고.

특히 중국에서 머물고 있는 조선 여성들이 짊어지고 있는 '엄마'라는 이름은 무겁고도 가혹한 의지였다. 자식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의 계약, 그 책임감이 없었다면 그들은 그토록 끔찍한 지옥을 견뎌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살아남은 한 어머니의 자식으로서, 그녀들이 만들어낸 세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고통의 심연

탈북 후 중국에 머무는 조선 남성들 또한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분단 체제에서 가장 약자인 여성들, 특히 중국에서 불안정한 신분으로 숨어 지내야 하는 조선 여성들이 마주한 고통의 깊이는 차원이 다르다. 그녀들의 삶은 그저 세상에 던져진 삶이었다.

가장 참혹한 것은 경제적 빈곤과 불법 체류라는 약점을 파고드는 폭력이다. 원래 폭력은 가장 약한 이들에게 더욱 가혹한 법이라지만,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국경을 넘은 조선 여성들이 마주한 상황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신분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약점 잡아 의도적으로 접근해 성폭력을 휘두르는 이들 앞에서, 여성들의 인권은 처참히 유린 당했다.

나는 이것을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가장 나쁜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살아남는 것조차 벅찬 상황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폭력의 공포까지 견뎌내야 했던 그 삶의 무게를 누가 감히 가늠할 수 있겠는가. 중국 현지에서 숨어 지내는 조선 남성들이 겪는 고난도 크지만, 여성들은 그 위에 '성별'이라는 굴레로 인한 폭력까지 중첩된, 실로 지옥 같은 시간을 건너온 것이다.

탈북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가혹한 이별과 단절을 의미한다. 잠깐 식량을 구하러 떠났던 엄마들은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금방 돌아올 줄 알고 기다리던 자식들은 단절된 채 반쪽짜리 세계를 만들어가야 했다. 필자도 12살이던 때 식량을 구해서 한 달 뒤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중국으로 떠났던 엄마를 2년 지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 당했기 때문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옥경'의 이야기는 이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중국에서 돈을 벌어 가족에게 송금하던 옥경은 가족이 너무나 그리워 다시 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남편과 아들은 돌아온 그녀를 반기기는커녕 냉대했다. 그들에게 옥경은 그저 송금을 해주는 존재였을 뿐, 돌아온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돈을 보내주던 엄마가 더 좋았을지 모를 가족들의 모습은 생존의 문제가 천륜마저 어떻게 비틀어 놓는지 보여주는 서글픈 장면이다.

기록되어야 할 서사

이들을 향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어떤가. 책 속의 어느 재일 북향민 여성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조선에 가면 탈북자라고 무시한다고 하는데, 여기(일본)는 우리에게 아무도 관심이 없으니 차라리 그게 편해요"라고. 한국 사회가 목숨을 걸고 온 이들을 '탈북자'라는 이질적인 시선으로 어떻게 타자화 했는지 뼈아프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어쨌든 저자의 표현처럼 "식민과 전쟁, 분단의 파고를 넘어온 조선 여성들"의 이야기, 특히 '엄마'들의 이야기는 반드시 기록되어야 한다. 탈북이라는 어쩔 수 없이 강요된 사건은 개인 주체들의 문제가 아니라 곧 세대의 문제이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이별과 단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분단은 이렇게 여전히, 앞으로도 단절을 만들어낼 예정이다.

"살아남은 여자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는 저자의 말처럼, 그녀들이 만든 세계는 비록 상처투성이일지라도 그 어떤 위인전보다 위대한 생존의 기록이다.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그 모든 수모와 공포를 견디고 살아남은 여성들. 그녀들의 삶 자체가 바로 영웅적이다. 이제 우리가 그 서사를 제대로 읽고, 기억해야 할 차례다. 나도 내 어머니의 삶을 꼭 기록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