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당내 선거에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권한을 동일하게 조정하는 당헌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에 앞서 1인1표제를 도입한 정당이 있다. 국민의힘이다.2025년 8월2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대표(가운데)가 당선되었다. ©공동취재 늘 떠들썩한 한국 정치권이지만 2026년 1월 넷째 주에는 유난히 이슈가 폭발했다. 수요일이었던 1월21일 오전 이재명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가 미디어를 달구었고, 이튿날인 1월22일에는 코스피 5000 돌파,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조국혁신당 합당 제안,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단식장 방문과 단식 중단 등 굵직한 뉴스가 쏟아졌다.
그사이, 큰 변화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이슈 하나가 조용히 굴러갔다. ‘민주당 1인1표제 당헌 개정’이다.
‘민주당 1인1표제 당헌 개정’은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출 시 민주당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행사하는 투표 권한을 1대 1로 동일하게 바꾸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 당헌은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투표권에 20대 1까지 차등을 둘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실제로는 대의원의 1표가 권리당원의 17표 정도 가치를 가진다.
1인1표제는 지난해 8월 당대표 선거에서 ‘당원 주권 시대’를 기치로 내건 정청래 대표의 핵심 공약이었다. 당시 선거에서 정 대표는 소위 ‘명심’ 후보라고 일컬어진 박찬대 의원을 누르고 당권을 거머쥐었다. 국회의원들의 표심이 강하게 작용하는 대의원 투표에서는 47%를 득표해 박찬대 후보(53%)에게 밀렸으나, 권리당원 투표(66%)와 국민선거인단 투표(60%)에서 박 후보를 크게 따돌린 결과였다.
당대표 취임 직후부터 ‘당원주권정당 특별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1인1표제 당헌 변경에 박차를 가했으나 지난해 12월 민주당 중앙위원회에서 안건이 부결되며 한 차례 제동이 걸렸다. 정 대표는 올해 1월 개정안을 다시 띄웠고, 1월 넷째 주 목·금요일(1월22~23일) 진행된 권리당원 여론조사에서 참여자 중 85.3%가 찬성 의사를 밝혔다. 1인1표 당헌 개정은 2월2~3일 이틀간 치러지는 중앙위원회 투표만을 남겨두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계파를 떠나 ‘가야 할 방향은 맞다’는 분위기가 공고하다. 대의원에서 당원으로 당의 중심을 옮기려는 개혁 방안은 적어도 10년 전부터 민주당을 관통하는 큰 흐름이었다. 2015년 문재인 당시 당대표는 온라인 당원 가입을 허용해 당원의 문턱을 낮추었고, 2023년 이재명 당시 당대표가 띄운 혁신위에서는 지금의 1인1표제와 동일한 내용인 ‘대의원제 폐지’를 혁신안으로 내놓았다.
다만 당내 지지 기반을 확고하게 다진 이후에는 다소 미온적인 입장으로 선회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당권에 도전하는 신진 세력은 기존 국회의원들의 장악력이 높은 대의원보다는 새로 유입된 권리당원들, 팬덤을 형성하는 강성 지지자들 사이에서 월등한 득표력을 보인다. 정확히 지난해 8월 정청래 대표를 선출했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정 대표는 당권을 쥐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친청계’로 분류되는 의원은 여전히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대의원 득표력을 충분히 키우지 못했다는 뜻이다. 올해 8월 당대표 연임을 위해서는 아직도 권리 당원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당권 경쟁’ 프레임에 갇힌 시야
‘1인1표제’를 둘러싸고 현재 민주당에서 나오는 이견은 이 갈등 전선 위에서 벌이는 힘겨루기이다. 친명계 최고위원인 강득구·이언주·황명선 의원이 정청래 대표의 1인1표제 도입 재추진에 일제히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였지만, 1인1표제 자체에 대한 비토가 아닌, 시점에 대한 문제 제기일 뿐이다. “선거 룰을 개정한 당사자들이 곧바로 그 규칙에 따라 선출된다면 셀프 개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1인1표제를 도입하되 적용 시점은 다음 전당대회 이후라는 것으로 당헌·당규를 개정하면 된다(1월19일 황명선 최고위원).” 도입하더라도 바로 다음 당대표 선거부터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언론도 주로 당권 경쟁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이 사안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대의원제를 폐지하겠다는 정당의 변화 앞에서 던져야 할 질문이 누군가의 유불리뿐일까? 대의원이 가지고 있던 권한을 허물어 권리당원에게 더 힘을 실어주거나, 아예 동일하게 만드는 이 같은 변화는 정당이 운영되는 방식을 본질적으로 뒤바꾸어 놓는다. 대중적 관심은 낮지만, 정치학에서는 ‘의사결정 구조(decision structure)’라는 명칭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이다. 1인1표제 당헌 개정은 민주당이라는 정당이 걸어갈 미래의 경로를 크게 변경시킬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사실 우리는 그 길을 먼저 간 정당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
잠시, ‘대의원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교과서적 의미에서 정당의 대의원(delegate)은 당원을 대표해 정당 운영 및 지도부 구성에서 투표권과 발언권을 행사하는 당내 대의기구 구성원을 뜻한다. 크게 당연직과 선출직으로 나뉘는데, 당연직에는 당대표, 국회의원, 지역위원장, 당 소속 지자체장과 광역·기초 의원, 고문 등이 들어간다. 선출직은 당의 각 지역위원회에서 권리당원 가운데 선출 혹은 추천한다. 지난해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여한 전국 대의원 수는 1만3000여 명이었다. 6개월 동안 매달 당비 1000원을 내면 될 수 있는 권리당원과 달리 전국 대의원은 매달 당비 5000원을 내야 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 정당은 거의 예외 없이 ‘대의원제’를 골자로 한다. 성균관대 미래정책연구원의 윤왕희 선임연구원은 “대의원제는 정당제도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드물게 정당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정치학자이다. 한나라당·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서 10여 년간 당직자로서 정책 실무를 맡기도 했다. 윤 연구원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모든 국민이 1표를 갖는다는 원칙에 더해 정치 과정에 더 깊숙이 관여하고 사회적 의제들이 성숙할 수 있도록 심어둔 제도가 정당이다. 나라의 모든 일을 국민투표로 정할 수는 없다. 그 결과가 꼭 바람직하지도 않다. 투표로 뭐든지 국민에게 직접 묻는다면 정치가 존재할 이유도 없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당원들을 대신해서 고민하고, 숙의하고, 책임감 있게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조직과 체계가 대의원제이다. 정당인데 대의원이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윤 연구원의 관점에서 대의원제 폐지, 즉 1인1표제는 정당이 자기 손으로 정당을 깨부수는 일과 다름없다.
민주당에 앞서 1인1표제를 먼저 도입한 정당이 있다. 국민의힘이다. 2010년대 초반 전당대회를 거치며 새누리당은 당대표 선거에서 대의원과 책임당원 사이 투표권의 차등을 없앴다(일반당원 가운데 입당 기간이나 당비 납부 등 일정 요건을 갖춘 당원을 민주당에서는 권리당원, 국힘 계열 정당에서는 책임당원이라고 부른다). 대의원제가 정치권의 고질적 문제였던 ‘돈봉투 선거’의 원흉으로 지목된 데다, 당시 박근혜 정권의 인기에 힘입어 새누리당 책임당원이 25만명으로 불어나자 이루어진 조치였다. 201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대의원에게 할당되었던 투표 반영 비율까지 없어지면서 국민의힘의 대의원제는 사실상 무력화된다.
윤 연구원은 이 시기 당대표 선거에서 1인1표제를 도입한 것이 국민의힘 몰락의 서막이었다고 진단한다. 대통령이 초래한 탄핵의 충격이 직접적 타격이었지만, 대의원제가 사라지면서 책임당원-대의원-주요 직책으로 이어지는 당의 구조가 허물어지고, 내부 사람을 키워내는 통로 또한 무너져내리는 등 상황이 동시에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2022년 2월15일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 윤석열이 부산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정당다운 기능’을 상실한 정당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결과물이 바로 윤석열이다. 윤석열은 제20대 대선이 치러지기 14개월 전까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을 지낸, 철저한 외부 인사였다. 계엄 이후 드러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대선후보 시절과 임기 내내 제기된 김건희씨와 처가의 비리 의혹을 떠나,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직을 수행할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었다. 간판만 거대 정당일 뿐 당을 대표할 정치인을 키워낼 역량도, 자당의 후보를 검증하고 가려낼 능력도 없는 국민의힘은, 대선이라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이벤트에 ‘상대 당을 이길 후보’라는 이유 하나로 ‘폐급’의 상품을 덥석 집어 내놓았다. 윤 연구원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정당의 책임과 기능이 약화된 채로 직접민주주의(국민투표)에 부친다면 윤석열 같은 사람도 대통령으로 선택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국민의힘에서는 이처럼 내부가 취약해진 정당이 얼마나 쉽게 먹잇감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 터졌다. 신천지 5만명 입당 의혹이다. 아직 의혹 단계이지만 수사 당국은 대선 경선이 있었던 2021년 11월부터 2025년까지 신천지 신도 5만명이 ‘필라테스’라는 프로젝트명 아래 국민의힘에 집단 가입했다는 내부 증언을 확보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신천지에 강경 조치를 취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를 두고 이만희 총회장이 앞길을 막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녹음이 폭로되기도 했다.
신천지 5만명 입당 의혹이 말해주는 것
책임당원 5만명은 국힘의 당내 주요 선거와 의사결정 과정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숫자이다. 지난해 8월 장동혁 대표가 당선된 당대표 선거 기준으로 국힘의 책임당원 수는 약 75만명이었지만 실제 투표에 참여한 인원은 절반에 못 미치는 35만명가량이었다. 그 가운데 장동혁 대표는 18만5000여 표를, 경쟁자이던 김문수 후보는 16만5000여 표를 얻었다.
아직까지는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투표권에 차등을 두고 있는 민주당에서도 권리당원 5만명은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이다. 지난해 8월 당대표 선거 당시 투표권을 가진 민주당의 권리당원 수는 111만여 명이었으나, 표를 행사한 권리당원은 절반을 조금 넘는 63만3000여 명이었다. 5만명은 권리당원 투표에서 약 8%의 득표율을 움직일 수 있는 숫자이다. 대의원제를 폐지한다면 이처럼 ‘의도’를 가지고 집단 가입한 특정 세력이 당을 뒤흔드는 것을 막을 장치가 헐거워진다. 그러나 연일 신천지발 뉴스가 터지는 상황에서도 1인1표제 당헌 개정과 이 문제를 연결해 고민하는 사람을 민주당 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2024년 11월 신천지 신도들이 임진각 평화누리 대관 승인 취소에 반발해 경기도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국회미래연구원에서 연구위원을 지낸 박상훈 박사는 〈정당의 발견〉 등을 펴낸 정치학자이다. 그는 권리당원과 책임당원을 중심으로 하는 ‘당원 주권’ 슬로건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대의원을 없애 당원의 문턱을 낮추면 영세한 서민들, 젊은 청년들, 사회적 약자들이 권리당원으로 들어오고 바닥 민심이 정당에 반영되는가? 그렇지 않다. 신천지나 통일교처럼 동원력과 조직력이 있는 세력, 강렬한 분노와 열망에 이끌려 즉각적인 해소를 바라는 이들이 주로 가입하고 권리당원의 상당수를 차지하게 된다.”
당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하는 권리당원과 책임당원의 비율이 높지 않다는 것은 선거철에 여실히 드러난다. 2010년대 초 국민의힘 16만명, 민주당 4만명에 불과했던 책임당원과 권리당원 수는 2025년 75만명, 111만명까지 불어났다. 그러나 선거를 치르기 위해 당원들의 자발적인 선거운동보다 일당을 주는 선거운동원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은 양당 모두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박상훈 박사는 1인1표제가 당원의 권력을 증대시키며 당내 기득권을 타파한다는 명분과 개혁 의지 역시 정치적 레토릭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투표로 결정할 권한이 생긴다고 해서 권력을 갖는 것이 아니다. 권력론에서 가장 중요한 힘은 ‘어젠다 파워’이다. 인생이 그렇듯 정치도 희소한 자원과 유한한 시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모든 의제를 다룰 수 없다. 누가 의제를 통제할지, 어떤 의제를 투표 안건으로 올릴지를 결정하는 데에서 진짜 권력이 작동한다.”
윤왕희 연구원 역시 당내 의사결정 구조가 직접민주주의에 가까워질수록 “정치 엘리트들에겐 더 쉽고 편한 방법이 열린다”라고 말했다. 상식과 배치되는 것처럼 들리는 얘기다. 그는 대의원들은 소수이니 권력자가 쉽게 주무를 수 있고, 권리당원은 수가 많으니 포섭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들은 스스로 대의원이기도 하고, 해당 지역의 대의원들에게 영향력을 끼친다. 이들은 각자의 노선을 가지고 정치를 하며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을 설득해서 움직인다는 것은 한층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당내 정치 과정 속에서 협의와 조정, 숙고 같은 질 높은 민주정의 역할이 출발한다고, 두 정치학자는 본다.
물론 현실에서, 한국 정당의 대의원제는 당원을 대표하는 대의기구라는 본래의 이상(理想)을 거의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직 대의원 이외에 선출직 대의원은 지역위원회에서 당원들이 선출해야 하지만, 실상은 지역위원장이 지명한 사람들이 대다수를 채운다.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의 뜻에 따르는 거수기로 통용되고, 당내 선거에서 금품 수수 사건이 폭로되면 대의원제가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권리당원 입장에서는 대의원이 당에 더 헌신하거나, 정치적으로 더 훈련된 한 단계 높은 당원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나랑 별반 다를 것도 없는 이들이 20배 더 많은 투표권을 행사하는 현재의 제도가 부조리하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경우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①대의원제를 혁신하고 시간을 들여 제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가꾸어간다. ②대의원제를 없앤다.
윤왕희 연구원이 보기에 대의원제 폐지는, 나무의 기둥에 벌레가 득실거린다고 나무 기둥을 잘라내고, 뿌리(당원)와 가지(국회의원 등)를 바로 이어 붙이겠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그는 1인1표제가 이대로 통과된다면 “10~20년 뒤 미래 민주당의 모습은 현재의 국민의힘과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들리는 전망이다.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겪고, 그 중 한 명은 불법 계엄까지 선포한 정당의 전철을, 한국 민주화의 주역으로 평가받는 정당이 밟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니 더욱 철저하게 물어야 한다. 1인1표제 앞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누군가의 유불리뿐인가. 1인1표제 당헌 개정은 더 좋은 정치를 향한 진짜 개혁이 맞는가.